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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언론보도

[중앙일보]'3년 제한'에 묶여 재활 못하는 정신질환자들

 

정신질환자들에게 생활공간을 제공하며 사회 복귀를 돕는 주거형 재활시설의 입소 기간은 최장 3년까지다. 충분히재활을 하지 못하고 독립하게 된 환자들은 상태가 악화돼 병원에 재입원하기도 한다. [중앙포토]

조현병 환자 이상윤(46)씨는 서울 관악구의 한 다세대 주택에 3년 가까이 살고 있다. 이 집엔 다른 정신질환자 6명도 함께 산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정신질환자의 사회복귀를 위해 지원하는 '주거형 재활시설' 중 하나다. 연고가 없거나 경제 사정 등의 이유로 가족의 보살핌을 받을 수 없는 환자들이 살면서 독립을 준비한다. 이씨도 여기에서 사회성을 회복하고 직업 훈련도 받았다.

그런데 이씨는 조만간 이곳을 떠나야 한다. 시설을 운영하는 복지재단이 이씨를 내보내려 해서가 아니다. 다른 사람이 이씨 대신 들어오기 때문도 아니다. 이곳은 정원 8명으로 이씨를 포함해 7명이 살고 있어 아직 여유도 있다. 이씨가 더는 지낼 수 없는 이유는 단 하나. 주거형 재활시설이 따라야 하는 '입소 기간 최장 3년' 법규 때문이다.  
지난달 30일 시행된 개정 정신건강복지법에 따라 정신질환자 본인 의사에 반하는 강제입원이 까다로워졌다. 상태가 심각하지 않다면 정신질환자가 병실을 나와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게 하자는 취지다. 개정 법이 잘 실행되려면 정신질환자를 제대로 관리할 사회 인프라가 관건이다. 병실에서 나와 사회 복귀를 위해 재활시설을 거쳐 가는 환자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정신건강복지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정신질환자는 원칙적으로 재활시설에서 1년간 지낼 수 있다. 시설을 나가기 어려운 사정이 있으면 2회까지 연장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최장 3년까지 지낼 수 있다. 법에서 이런 제한을 둔 이유는 사회복귀시설의 주 기능이 단순 주거 제공이 아니라 재활에 있기 때문이다. 재활 의지가 없는 일부 환자가 시설에 마냥 머무는 것을 막고 입소가 더욱 시급한 환자에게 기회를 주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장 관계자와 전문가들은 "효과적 재활을 위해선 3년 제한은 적절하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송승연 정신보건사회복지사는 “병원 등 폐쇄적 공간에서 장기간 지내다 퇴원한 환자는 아주 기초적인 사회성 회복에도 1년 이상 걸린다. 시설에 적응하는 기간, 시설을 나갈 준비를 하는 기간 등을 고려하면 실질적 재활 기간은 1년밖에 안 된다. 이것으론 재활이 어렵다”고 말했다. 구로구에 있는 정신질환자 시설 ‘다솜’에 따르면 아침에 일어나 씻고 옷 입고 제 시간에 출근하기까지 성공하는 데에만 1년이 걸리는 환자도 있다. 3년 안에 자립이 가능한 환자도 소수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최장 3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시설을 떠나는 환자들은 고시원·찜질방을 전전한다. 그러면서 치료·재활의 사각지대에 놓인다. 김용득 성공회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시설에서 생활하다 독립해 시설과 단절되면 그동안의 재활 효과가 순식간 무너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상태가 악화돼 다시 병원에 입원한다. 하지만 3년을 채우고 나간 경우 재입원을 하더라도 원래 있던 시설로 돌아 올 수 없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환자별로 퇴소 이후의 후속 조치 등을 고려해 시설에서 지낼 수 있는 기간을 선별적으로 연장할 수 있게 하자”고 제안한다.
 
'3년 제한'을 완화하면서도 시설이 방만하게 운영되지 않게 하려면 진료와 재활 간의 연계 구축이 시급하다. 지금은 정신질환자가 진료 받은 병원, 그리고 퇴원 후 지내는 재활시설 간에 환자 상태에 대한 정보 공유가 이뤄지지 않는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3년 제한에  얽매이지 않으려면 환자를 진료한 전문의, 그리고 환자가 생활한 재활시설 간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환자 상태를 전반적으로 모니터링하는 체계가 마련되면 환자에 따라 재활 기간을 선별적으로 정하면서도 공정한 관리가 가능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보건복지부도 '3년 제한'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당장 독립이 어려운 환자는 3년 이상 지낼 수 있게 하는 예외 조항을 두고 있다. 차전경 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장은 “‘입소자가 직계가족이 없는 무연고자이거나 부양의무자가 없어 가족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우엔 운영위원회 심의를 거쳐 입소기간을 더 연장할 수 있다’는 예외조항이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복지부 설명과 달리 현장에선 예외가 적용되기 어렵다. 환자가 3년을 넘겨 생활하려면 퇴소 조치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시설 측에서 정부에 입증해야 한다. 고순애 주거시설협회장은 “가령 가족의 보호가 어렵다는 것을 입증하려면 보호의무자의 의무 불이행을 고발조치한 서류를 첨부해야 한다. 시설 입장에서 그렇게까지 하긴 어렵다”고 토로했다. 
예외 허용시에 연고자 유무보다도 증상의 경중을 따지는 게 타당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성남시에 있는 재활시설 '꿈터’의 시설장은 “ 증상이 아무리 나빠도 연고자가 있다는 이유로 연장이 안 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말했다.

정신질환자의 재활과 사회 복귀를 돕는 서울의 '태화샘솟는집'에서 정신질환자(오른쪽)가 요리 수업을 받고 있다. [사진 태화샘솟는집]

 

 재활시설이 충분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개정 정신건강복지법 시행에 따라 늘어날 수요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도 아니다. 한국사회복귀시설협회에 등록된 주거형 재활시설은 전국에 총 172곳. 정원을 모두 채우면 약 2200명이 지낼 수 있다. 현재 정신질환 입원환자는 7만 명으로 추산된다. 의료계는 이중 1만9000명이, 복지부는 이보다 더 적은 숫자가 개정 법에 따라 퇴원할 것으로 본다. 이들 환자가 모두 동시에 퇴원하는 것은 아니며  일부는 가정으로 돌아간다. 전문가들은 '3년 제한'을 다소 완화해도 큰 문제는 없다고 보는 이유다. 이용표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3년 제한 때문에 입소자를 억지로 내보내다 보니 오히려 일부 시설에선 정원을 못 채우고 공간이 남아 시설과 서비스를 효율적으로 이용하지 못하는 부작용도 있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론 '재활시설'과 '완전 독립' 사이에 중간 단계를 구축해 환자들이 사회에 '연착륙'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홍선미 한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영국 등 선진국에선 환자를 시설에서 무조건 내보내지는 않는다. 단기간에 독립적인 삶을 준비시켜주는 시설, 환자의 기능에 따라 장기적으로 살 수 있는 독립주거 시설, 공동생활 시설 등 다양한 형태를 운영한다. 이에 비하면 한국에선 정신질환자의 선택권이 너무 적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장기적으로 인프라 확대에 관심을 두지 않으면 법 개정의 의미가 흐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백수진 기자 peck.soojin@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3년 제한'에 묶여 재활 못하는 정신질환자들 http://news.joins.com/article/21650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