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신장애인 기숙사 건립에… “불 지르겠다”는 지역주민도

2019.06.14 09:11이야기/태화샘솟는집 뉴스

부산 금곡동 갈등 첨예… 부산ㆍ경남 입소시설 6곳뿐 “지자체가 공공주택 계약해 민간 위탁 방식 도입 필요”

“정신장애인공동생활가정(기숙사)을 건립하면 불을 지르겠다는 주민도 있었습니다. 비장애인과 경쟁해 취업에 성공할 정도로 회복된 환자들을 위한 숙소까지 거부한다면 정신장애인은 대체 어디에 가서 살라는 말인가요?” (사회복지법인 나눔과행복의 박경덕 사무국장)

지난 28일 정신질환을 치료하는 부산시 연제구 나눔과행복병원 앞에 부산 금곡동 주민들과 시의원, 구의원이 모여 금곡동 중증 정신질환자 공동생활가정 운영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나눔과행복 제공

지난 4월 경남 진주에서 발생한 조현병 환자의 살인사건을 계기로 정신장애인 치료ㆍ재활 인프라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정신재활시설들은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정신장애인의 폭력 성향은 질병의 증상이 아니며 공격성을 보이는 환자라도 급성기(응급상황)로 제한된다는 것이 현장 의료ㆍ사회복지학계의 공통적 의견이다. 하지만 공포에 사로잡힌 주민들이 병원과 재활시설 신규 설치를 반대하고 나선 지역이 적지 않다.

 

부산 북구 금곡동은 현재 가장 갈등이 첨예한 지역 중 하나다. 사회복지법인 나눔과행복이 금곡동 주택가에 정신장애인 최대 6명의 생활이 가능한 공동생활가정을 마련하고 지난 4월10일 보건당국에 운영신고를 마쳤지만 불과 1주일 뒤인 같은달 17일 진주 참사가 발생하면서 주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애초 나눔과행복은 2008년 금곡동에 3억8,000만원을 들여 약 660㎡(200평)에 가까운 부지를 매입, 정신질환자 직업재활센터를 운영하려 했고, 2014년에는 이 부지에 단층주택(약 99㎡)을 완공하고 입소시설을 운영하려 했지만 번번이 지역주민의 반발에 부딪혔다. 이번에는 부산시까지 입소시설건립에 우호적이었던 터라 어느 때보다 기대가 높았지만, 진주참사가 반대 여론에 불을 댕긴 것이다.법인 측과 주민, 시ㆍ구의원들이몇 차례 협의했지만 분위기는 험악하다. 협의에 참여했던 이동호 부산시의원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이대로 입주하면 불상사가 일어날 수도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입소시설을 반대하는 주민들은 이 지역에 ‘기피시설’이 많다며 강경한 반대 입장이다. 이재수 재활시설ㆍ합숙소 반대 비대위 공동대표는 “금곡동에는 사회복지관이 6개 있고 장애인과 기초생활수급자가 많은 지역인데 정신질환자들까지 들어오면 발전할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동호 시의원은 “금곡동은 영구임대아파트만 6,100가구가 있고 소년소녀가장, 독거노인, 정신적으로 장애가 있는 분도 많다. 아픈 사람이 더 들어와선 안 된다”고 말했다.김명석 북구의원도 “(건물을 사용하려면) 지역주민이 사용할 수 있는 커뮤니티 시설로 용도를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복지법인 나눔과행복이 부산 금곡동에 건립한 중증 정신질환자 공동생활가정 건물 앞에 지역주민들의 건립 반대 현수막이 붙어 있다.나눔과행복 제공

반면 법인 측은 정신장애인에 대한 주민들의 막연한 편견 때문에 합법적 사업을 취소할 수는 없다고 반박한다. 박경덕 나눔과행복 사무국장은 “주민들은 어떤 설명도 들으려 하지 않고 무조건 신고필증을 반납하라고 요구한다”며 답답해했다. 공동생활가정에 거주할 환자들은 겉보기에는 환자가 아닌 사람들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병이 호전된 상황인데, 이 점을 설명해도 주민들이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상 공동생활가정은 신고만 하면 운영이 가능하고 설립 이후 1년이 지나면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일부 운영비를 보조받을 수 있다. 박 사무국장은 “여기에 들어올만한 분들은 스스로 복약관리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장애인 작업장이 아닌 일반 직장에 자기 힘으로 취업할 수 있을 정도로 병이 회복된 경우”라며 환자들을 막연히 위험인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게다가 낮 동안에는 직원이 상주하기에 사실상 기숙사나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갈등은 부산과 경남 지역엔 정신장애인들이 지역사회 적응훈련을 하는 동안 적절한 조력을 받으며 생활하는 사회복귀 중간단계주거공간이 크게 부족한 상황 때문에 증폭되고 있다. 부산에는 공동생활가정이 남자ㆍ여자 각각 1곳씩 2곳에 불과하고, 경남까지 범위를 넓혀도 입소시설은 모두 6곳에지나지 않는다. 박 사무국장은 “6ㆍ25전쟁으로 인구가 폭증하면서 노숙인 문제가 심각해지자 부산은 곳곳에 요양(수용)시설이 생겼다”면서 “이 시설들은 이후 정신병원으로 전환됐지만 퇴원할 수 있는 사람들이 갈 곳이 없어 병원에 수용되다시피 한 채 생활해 왔다”고 말했다.

 

금곡동 이외에도 전국적으로도 정신장애인의 사회복귀를 위한 주거공간은 크게 부족한 상황이다. 전국 입소형 정신재활시설 236곳 가운데 114곳이 서울ㆍ경기권에 몰려있다. 박 사무국장은 “시설 매각도 검토하고 있지만 주변 주택이 부지 일부를 점유하고 있어 제값을 받기가 어렵고 사회복지법상 손해를 보고 팔 수 없도록 돼 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도 여기서 후퇴하면 정신장애인이 부산에서 살아가기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어 이번 사태를 주시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정신질환을 치료하는 부산시 연제구 나눔과행복병원 앞에 부산시 금곡동 주민들과 부산 시의원 이동호(왼쪽부터) 구의원 김명석, 김성택이 모여 금곡동 중증 정신질환자 공동생활가정 운영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나눔과행복 제공

 

이 같은 갈등은 금곡동의 문제만이 아니다. 경기 오산시에선 지난달 정신질환자를 위한 폐쇄병동을 갖춘 병원이 보건소로부터 운영허가를 받았지만, 주민 반대에 부딪혔다. 주민들 반발에 시의회가 허가절차상 문제가 없는지 조사 중이다. 청와대에 제출된 허가 반대 국민청원은 참여자가 9,500명을 넘어섰다. 현장 경력 20년인 전준희 정신건강복지센터협회장은 “공동생활가정 입소자가 사고를 쳤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이 없다”면서 “재활시설 확대가 시급하지만 많은 기관이 주민 반발을 피해 숨죽여 임대장소를 찾아 다니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재원 부족 등을 이유로 민간에 정신장애인들을 도울 책임을 미루고 있다고 지적한다. 정신건강복지법 제26조에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정신재활시설을 ‘설치할 수 있다’고 돼 있는데 지역주민들의 민원을 의식해 중앙정부와 지자체 모두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꺼린다는 것이다.

 

현장에선 정신장애인 입소시설 운영은 민간이 하더라도 인프라만은 예산과 행정능력이 있는 정부나 지자체가 맡아주기를 바란다. 지방정부가 임대주택 등을 활용해 주거시설을 적극적으로 공급하면 지역주민과의 갈등을 최소화할 수도 있다는 제안도 나온다. 1998년부터 공동생활가정을 운영해온 서울 마포구 태화샘솟는집의 문용훈 관장은 “우리 시설은 고급 아파트 바로 앞에 있지만 지금까지 범죄가 발생한 적이 없다”면서 “지방자치단체가 공공주택을 계약해서 민간운영자에게 위탁하는 방식을 적극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민호기자kmh@hankookilbo.com

지난달 28일 정신질환을 치료하는 부산시 연제구 나눔과행복병원 앞에 부산시 금곡동 주민들과 부산 시의원, 구의원들이 모여 금곡동 중증 정신질환자 공동생활가정 운영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나눔과 행복 제공

 

원본기사 :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06090806086753?did=NA&dtype=&dtypecode=&prnews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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